진화론이란 말은 지난 번 읽었던 <평행 우주>에 등장한 빅뱅과 시공간, E=mc^2처럼 한 동안을 교과서 속의 용어로 박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접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통하여 동면에서 깨어나 제 머리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이기적 유전자>의 초판이 1976년에 나왔고 저는 30년 기념증보판을 읽었는데, 고등학교때 배웠던 진화론과 30년 전  진화론은 꽤나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교과서 수준의 진화론은 실제로는 진화론의 초보적 개념만을 알려주었던 것이죠.(그래서 진화론을 배우고도 원숭이가 언제쯤 인간이 되느냐는 질문을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1970년대의 진화론이 매우 새로운 느낌이었는데 그 이후 30년 동안 진화론은 또 얼마나 변했을까요?


    이번에 읽은 <다윈의 식탁>의  부제는 ‘논쟁으로 맛보는 현대 진화론의 진수’입니다. 다윈이라는 거인이 시작한 진화론은 1859년 <종의 기원>에서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종의 기원>에 나오는 생명의 나무처럼 진화론도 점차 진화해 왔던 것이죠.






    이 그림의 좌측과 우측은 서로 다윈의 적자임을 주장하면서 진화론을 발전시켜 나갑니다. 이 책은 좌우측에 있는 진화론 전문가들이 모여 토론을 벌이는 꿈의 테이블(식탁)을 실황 중계하는 ‘팩션’입니다. 이 책의 독자였던 어떤 교수님이 실제로 BBC 방송국에서 토론회의 원본을 찾으려했다는 에피소드는 이 책이 어느 정도 이상의 사실을 기반으로 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내용은 이해하기 쉬웠고, 특히 <이것이 진화론이다>란 에피타이저를 통해 진화론의 기본 개념을 충실히 설명하고 있어서 진화론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를 하고 있습니다.


    또, 이미 진화론에 어느 정도 익숙한 사람들도 진화론의 전반적인 지형도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합니다. 사실 저도 이 책을 통해서 좌측에만 익숙했던 저의 편향된 진화론에 대한 생각들을 균형있게 바꾸는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기본적인 개념과 각 이론들의 개설, 그리고 이 이론들 사이의 대립구조를 꽤 충실하게 알려주어서 개론서의 역할은 물론 각론까지 망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면서 틈틈이 저자의 의견이 나타나고 있는데, 저자의 서술을 바탕으로 내린 저의 결론이 저자의 의견과 거의 같아져 버렸습니다. 제가 저자의 의견에 넘어간 것 같습니다^^ 저자의 의견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이 장점일 수도 있지만, 이 책의 구성은 애시당초 저자의 의견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장치들이 준비되어 있는, 어느 정도 의도된 의견의 표명이기 때문에 이것이 저자의 의견임을 알고 대한다면 아무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저자인 장대익 교수님이 스스로 밝혔듯이 다소 도킨스 쪽에 가깝지만 일부는 굴드 쪽의 의견에 동의하기도 하면서 중심을 잡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죠. 이 양쪽을 같이 보면서 중심을 잡는 것은 환원적 세계관에 사로잡히지도 않고, 굴드의 카리스마에 굴복하지도 않을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며 자연을 더욱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눈이 되어줄 것입니다.


    다만, 이 책에서 끝낸다면 그들의 주장과 이론을 제대로 음미하진 못할 것 같습니다. <다윈의 식탁>은 한 권만으로도 에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깔끔한 식탁이지만, 이후 더 많은 책을 부르는 관문적 식탁이 아닌가 합니다.


    ps. 생명의 나무하면 또 유명한 나무가 하나 있지요. 제가 참 좋아하는 그림입니다. <링크 클릭>

    Posted by 김힐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