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를 산다는 것> 오자와 이사오 지음, 이근아 옮김
<치매를 산다는 것> 오자와 이사오 지음, 이근아 옮김
<치매를 산다는 것>은 재작년에 읽은 <치매 노인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에 이어 두 번째 읽는 치매에 관련된 책입니다. 이전 책에 비해 좀 더 세밀한 관찰과 보고, 그리고 대응 방법까지 담고 있는 이 책을, 저는 여러가지 의미가 담긴 기록으로 읽었습니다.
20년 이상 치매 노인을 치료해 온 정신과의사의 진료 기록이면서, 치매의 중핵 증상과 주변 증상, 그리고 치매의 진행 과정에 대해 알려주는 정보 제공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또, 치매 노인에 대한 인간적인 관점을 제시하는 안내서 역할도 할 수 있고, 치매 노인의 증가를 앞두고 있는 우리들에게 미리 마음과 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돕는 개론서로도 읽을 수 있죠. 치매가 온 또는 치매가 올 수 있는 부모님을 모시거나, 자신도 언젠가는 치매에 걸릴지도 모르겠다고 불안해 한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 목록에 올려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의사 그리고 자식의 입장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중핵 증상의 경우는 진행을 막아 주는 것도 좋은 치료 방법이지만, 주변 증상은 인간 관계와 생활 요건을 통해 치료를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는 경도 인지장애 환자가 거의 내원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책은 좀 더 체계적인 치료 계획을 세우는데 도움이 됩니다. 공격성이나 ‘도둑망상’을 보이는 치매 환자를 그저 진정시켜 억눌러 두는 방법이 아닌, 인간다운 치료법을 준비해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러나, 치매에 대한 개인적인 대응은 한계가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따라서, 사회적이고 국가적인 부조가 필요할 겁니다.
치매에 관한 우리나라 기사들을 살펴보면 “2012년 현재 65세 이상 노인의 9.1%(52만2000명)가 치매를 앓고 있다.”고도 하고, “65세 이상 치매 노인은 앞으로도 꾸준히 증가해 2050년에는 전체 노인 1천615만6천명 가운데 212만7천명을 차지해 치매 유병률이 13.2%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여 치매 환자의 증가를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런 증가에 대한 국가적, 사회적 준비는 과연 제대로 되고 있는 것인지 의심과 걱정이 됩니다.
현재의 요양병원 체계가 늘어나는 치매 환자들이 그들의 삶을 잘 살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요? 의료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사람들은 과연 치매 환자들을 강 건너의 대상으로만, 단지 숫자로만 보지 않을까요? 이것은 심각하고 실제적인 걱정입니다. 머지않아 나와 이 글을 읽는 본인의 이야기가 될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쓰는 글이 우리나라 치매 대응 체계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게 하는데 한 숟가락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네요. 아마 저자도 이런 생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것 같습니다.
저자에 대해 써본다면, 책의 곳곳에서 저자의 온화하고 섬세한 인품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록 담백한 문체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썼지만, 실제로는 많은 연구와 고초의 결과물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치매 노인을 피상적인 대상으로 대하지 않고 한 명의 인격으로 대하는 관점과 그리고 그렇게 대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30초 진료” 의사라면 닿을 수 없는 이해의 경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과 사촌 여동생의 죽음을 대하는 담담한 태도가 더 깊은 인상으로 남습니다. 어떻게 보면 잘 죽는다는 것은 잘 산다는 것의 일부이거나 그것의 완성일 겁니다. 이 책은 치매라도 잘 살고 잘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는데 도움을 줍니다.
기억에 남는 구절들을 몇 개 인용합니다.
“치매를 앓는 사람들에게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는 기억에 남지 않지만 그 에피소드에 얽힌 감정은 축적되는 듯하다.”
“치매가족들이 규범이나 상식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중략) 집 안에 먼지 하나 남기지 않던 사람이 뭐든지 대충대충 하는 스타일로 바뀐다.”
“누구보다 의존해야 할 상대에게 공격성을 보이는 이유는 ‘누구보다 의존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망상 증상이 있는 사람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서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는데 단지 그것을 억누르거나 약하게 나타나는 것 같네요.
“나이를 먹어도 에너지가 넘치고, 치매라는 난치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활기차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생활인으로서의 여성의 강인함. 반면 무력한 남성.
“아내를 우월한 입장에서 소유함으로써 간신히 유지되는 가치뿐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질투망상에 빠진다.”
“치매는 상상의 세계와 현실세계 사이를 왕래하지 못하게 한다.”
“현재를 활기차게 보낼 수 있거나, 실패를 해도 ‘괜찮아, 이대로도 충분해’라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면, 과거로 여행을 떠날 필요가 없다.”
“‘지능의 감독자’ 또는 지적 주체라고 할 수 있는 기능이 쇠락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그대로도 좋아요. 힘들 때는 우리가 도와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