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 훈육형 부모와 눈높이 부모의 사이
책과 사람
2013. 7. 11. 16:35
여기에 두 부류의 부모가 있습니다. <타이거 마더>의 저자 에이미 추아와 같은 훈육형 부모와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가 주장하는 바를 실행하는 눈높이 부모. 책을 읽지 않은 분을 위해 부연한다면, 아이의 미래를 위하여 스스로의 시간과 노력과 재산을 투자하여 아이를 부모의 계획에 따라 엘리트로 만들어가는 것이 훈육형 부모이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면서 마음의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배려하는 부모를 눈높이 부모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교육환경을 되짚어 보자면 훈육형 부모가 대세를 이루었고, 이루고 있습니다. '맹모삼천지교'와 '불을 끄고 글을 쓰게한 한석봉의 어머니'로 대표할 수 있는 동양적 교육관에서는 입신양명이 하나의 목표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모의 현대판이 '치맛바람'이고 '강남엄마'라 할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을 우리가 가진 공통된 교육와 양육의 배경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반면 각 개인의 부모가 가진 역량과 교육 철학이 달랐기 때문에, 또 서양식 교육이론의 영향과 교육환경의 발전도 있었기에 조금씩은 다른 교육을 받으며 자라나 이제는 부모 세대가 되었거나 되어갑니다.
이런 배경과 현실을 합쳐 지금의 부모-자녀간에 이루어 지는 양육 형태를 생각해 본다면, <타이거 마더>식의 훈육형 부모는 이론적으로는 큰 환영을 받지는 못하겠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환영받는 교육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한, <엄마가 아이를...>의 방식은 이론적으로는 환영을 받으나 실제로는 잘 적용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론과 실제의 괴리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결할 것 인가는 부모로서 또는 부모가 될 사람으로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래에서 두 책이 지향하는 부모상을 살펴보고 어떤 방식으로 현실과 이론의 괴리를 좁힐 것인가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타이거 마더>가 추구하는 부모상
너무나 극성인 에이미 추아의 양육 방식을 보면서 한숨을 쉬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딸들의 바이올린은 차에 싣고, 피아노는 대여하고, 바이올린 선생님과 그 남자친구의 숙소까지 잡아주면서 대동하는 가족여행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극성에도 중요하고 유익한 점이 있습니다.1) 아이의 한계를 확장하는 교육방식
일반적으로 아이는 어른에 비하여 집중력과 인내력, 체력이 부족합니다. 또한, 스스로의 한계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 물론 부모도 자녀의 한계를 알지 못합니다. 에이미 추아는 부모는 이미 알고 있다고 하였지만, 실제로는 한계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때문에, 한계를 넘어서 노력하는 경험과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 스스로를 통제하는 통제력을 키워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아이가 빨리 포기한다고 해서 부모도 포기해 버린다면 그것은 숨어있는 가능성을 포기하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2) 반복의 중요성
언어, 산수, 체육이나 미술, 음악 활동 등 무엇이든 반복이 없이 이루어 지는 것은 없습니다. 에이미 추아는 말합니다.
기계적 반복은 미국에서 과소 평가 받고 있다.(p. 40)
이것은 아웃라이어를 통해 유명해진 '일만 시간 법칙'의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다른 이보다 먼저 1만 시간을 넘은 축적을 쌓은 아이는 당연한 결과에 따라 신동이 될 수 있는 것이죠. 모든 아이가 신동이 될 수 없지만, 신동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더라도 반복이 없다면 신동이 되지 못합니다.
3) 가능성의 극대화
에이미 추아는 자녀의 성공을 위해 가능한 모든 자산을 투자합니다. 금전은 물론이고 본인의 시간과 에너지, 인맥까지 투자하여 자녀를 키워냅니다. 그렇지 않은 부모가 없겠지만, 그녀가 투자하는 것들은 두 딸을 성공가능성을 극대화 하였습니다. 자질이 엿보였을때 충분한 기회의 부여가 있어야 그 자질이 자라날 수 있을 것입니다. 금전적 투자만으로는 획득할 수 없는 기회를 그녀는 잡을 수 있었습니다.
2.<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가 추구하는 부모상
1) 독립적인 아이를 키우는 부모지나치게 엄격한 부모는 아이의 생활 모든 면을 관리 감독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먹는 법, 입는 법, 자는 법은 물론이고 학교 생활과 심지어는 자녀의 꿈까지 관리합니다. 에이미 추아는 첫째 딸 소피아는 피아니스트가, 둘째 딸 룰루는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길 바랬죠. 소피아는 엄마의 관리 안에서 적응하는 방법을 익히고 엄마의 꿈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고 룰루는 강하게 반항했습니다. 부모의 관리와 감독은 어린 시절에는 잘 작동할 수 있으나 자녀가 커 갈수록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룰루와 같은 반항아를 만들거나 소피아와 같은 순종적이지만 스스로의 꿈을 잃어버린 아이가 되기 쉽습니다.(<타이거 마더>의 소피아가 과연 자신의 꿈을 잃어버린 것인지는 불분명합니다.) 후자의 경우에는 어른이 되어서도 스스로 결정하기를 두려워합니다. 결정의 순간을 가능한 남에게 미루어 버리는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자라나죠. 겉으로 보기에는 남의 의견을 잘 배려하는 좋은 성격으로 보이지만, 스스로 결정을 꼭 해야만 하는 순간에 결점이 드러나게 됩니다. 부모가 항상 결정을 대신해 왔었기 때문에, 결정에 대한 결과를 책임지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경험이 압도적으로 부족했던 것이죠. 마마보이, 마마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독립성이 부족하면 어쩔 수 없이 마마보이, 마마걸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엄마가...>의 육아 방식에 따라 아이의 말과 표현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인정하고 스스로 결정하게 한다면 저절로 독립성, 자율성이 커질 수 있을 것입니다.
2) 타인을 배려하는 아이로 만드는 부모
마음을 거절당한 아이는 타인의 마음도 받아들일 줄 모르게 됩니다. 부모가 정해둔 틀에 맞추어 육성되는 아이는 부모의 일방적인 명령에 따를 뿐이며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아이는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를 얻어온 시험인데 부모의 입장에서 부족하다고 야단을 치는 경우에는 자신의 마음의 표현- 힘들었다, 어려웠다, 기분좋다, 하기 싫다 -을 대부분 무시당하게 되며, 이는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아이나 짜증을 잘 내는 아이가 되기 쉽습니다. 스스로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과 남의 마음을 이해하는 방법을 모르고 자란 아이는 커서도 배려와 이해를 모르는 어른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흔들리는 아이의 눈빛을 읽고 이해'하거나, "아이의 마음이 엄마와 다르다는 것을 우선 알아주려" 한다거나, "아이의 방식을 믿어주고 인정"한다면 그 아이는 배려를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3) 부모 자신의 내면 아이 치유
마음의 상처는 보이는 흉터로 남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난 줄도 모르고 지낸다.
저자 문은희의 말입니다. 어린 시절에 부모에게서 받은 마음의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마음의 상처는 말, 태도, 행동, 삶의 방식으로부터 비롯될 수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마음의 상처가 있는지 모르는 데 있습니다. 자신보다 부모의 결정, 기분, 목표를 우선 순위에 두고 열심히 살아왔으며, 겸양과 인내의 사회 분위기도 이를 도왔습니다. 게다가 언어가 익숙해지기 전에 받은 상처는 언어의 형태로 기억에 남아 있지도 않으면서 긴 시간을 두고 마음을 괴롭히게 됩니다. 이러한 부모는 그러한 상처를 자녀에게 다시 넘겨줄 가능성이 큽니다. <엄마가...>에 일부 소개된 것처럼 스스로의 느낌을 찾아서 표현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느낌과 마음의 상태를 파악하게 되면 스스로 치유될 가능성이 커 집니다. 스스로 치유되어야만 마음의 상처를 자녀에게 넘겨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4) 부모-자녀의 좋은 관계를 유지
부모와 자녀의 대화가 즐겁게 이루어지고, 자녀가 스스럼없이 부모에게 감정과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가족 관계를 형성하는 기본입니다. 딸 룰루의 마음을 무시하고 엄마의 목표를 향해 강행군 했던 <타이거 마더>는 결국 딸과 심각한 냉전 상태에 이릅니다. 이 단계에서는 싸우면서도 서로 대화하던 관계가 깨어지고 맙니다. 에이미 추아가 룰루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지 않게 되자 룰루는 웃음과 행복, 성취욕을 되찾게 되고, 모녀간의 대화와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5) 행복한 아이
위 1~4의 내용 모두가 아이 스스로 행복을 느낄 수 있고 그 것을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게 합니다. 감정을 나누는 것, 행복을 느끼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것이지요. 다만, <타이거 마더>가 염려하는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을까에 대한 대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3. 대립 구도 벗어나기
이론과 실제의 괴리에는 훈육형 부모와 눈높이 부모가 서로 대립하고 있다고 생각이 그 기저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양자의 접근 방식이 거의 반대인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많은 부모들이 추구하는 양육의 형태는 이 두 가지 방식의 양립입니다. 두 가지를 따로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였거나, 인식하더라도 동시에 추구하지 않았던 부모들은 이러한 책들을 통해 자신의 양육방식을 의식적으로 조절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완벽히 두 개의 방식을 고수한다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하겠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중용中庸의 지혜를 빌려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중용이라고 한다면, 양극단의 한 가운데 지점을 가리키는 것으로 오인할 수 있습니다만, 이는 서양철학 사조에 영향받은 오류입니다.(김용옥, <중용, 인간의 맛>) 이를 아이들의 양육에 대입해 본다면, 훈육형 부모와 눈높이 부모의 완전한 중간지점이란 존재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의미없는 상상일 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중용장구의 내용 일부를 살펴보겠습니다. 공자가 순(舜)임금에 대해 말하며 중용의 개념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전략) 순임금은 묻기를 좋아하고 가벼운 인근의 이야기를 잘 살폈으며 나쁜 것을 숨겨주고 좋은 것은 잘 드러내어 주며 양 극단을 잡아(執其兩端) 그 가운데(中)를 백성에게 쓰니 그 때문에 순임금이 된 것이다.또한 중中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대개 중이라는 것은 정해진 몸체가 없고 때에 따라 (적절한 中이) 있으니 이것이 평상平常의 이치이다.즉, 중용이라는 것은 양극단의 주장을 모두 파악하되 실제의 상황에 맞게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훈육형 부모와 눈높이 부모라는 양극단의 방식을 때에 맞게 적절히 사용하는 중용의 방식이 우리가 실제로 시행해 나가야 할 자녀 양육의 방식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두 가지 방식의 양육이 지향하는 바를 이해하고, 실제에 적용할 때에도 그 지향하는 바에 따르면서, 한 가지 방식에서 나타나기 쉬운 부작용과 놓치기 쉬운 약점은 다른 방식으로 보완해가면서 키우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이마저도 너무나 이상적이고 이론에 치우친 표현이긴 합니다만, 아이들 마다 각기 다른 개성과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라기 때문에 어떤 하나의 양육법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 책들과 이러한 생각이 어느 정도의 방향 설정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