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전날에 읽었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가 여러 생각들을 불러일으키길래, 관련 포스트를 두 편으로 나누어 쓰려다가, 오늘 읽은 <화성의 타임 슬립>의 인상이 너무 강해서 포기하고 말았다.

    먼저 쓴 포스트를 조금 고쳐 쓰고나서, 이 불면의 밤에 새 책에 대한 포스트를 간단히 써봐야겠다.


    얼마전, 인류는 화성에서 물이 있음을 발견했다. 얼마간 뒤에는 정말 필립 K. 딕의 소설처럼 화성에 거주하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화성 탐사로봇 큐리오시티가 보내온 첫 사진.


    그런데, 작가의 상상대로라면 화성에 살기는 쉽지 않겠다. 1/3의 사람이 정신분열증으로 고생하는 세상이라니.


    작가는 미래의 화성을 황량하고 우울하게 그려낸다. 그 분위기 형성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은 과거에 정신분열증을 앓았던 과거력을 가진 잭 볼렌.


    이런 우울한 분위기의 소설을 쓸 수 있었던건 분명 작가 자신의 경험이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실제로 공포증과 망상증, 우울증, 그리고 자살 시도에 이르기까지 고통스러운 정신질환을 앓았다. 그때문에 잭 볼렌과 자폐아 만프레드를 둘러싼 세계가 천천히 부스러져 내리고, 현실과 환상의 윤곽이 해체되어 서로 스며드는 묘사는, 뭐라고 해야할까.. 현실이 아닌 현실을 겪는 이질감을 준다.


    현실과 환상의 뒤섞임은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에서도 자주 등장했지만, 작가는 이 책에서 더욱 생생하고 무섭게 묘사한다.

    작가의 경험과 지적인 능력 덕택에 나는 칼 융과 다차원 우주, 정신분열증과 자폐증이 뒤섞인 묘한 세계를 간접 경험할 수 있었는데, 서로 다른 맛을 가진 과일을 묘하게 잘 버무렸다고 해야하나? 상큼하고 달콤한 것은 아니지만, 먹고나서도 뒷맛이 기억에 남는 그런 음식을 먹은 듯 하다.

    (게다가 덤으로 칼 융을 읽어보겠다는 생각도 생겼다)


    사실, 등장인물이 그리 많지 않고 그 인물들 간의 관계가 서로 단선적으로 이어져 있어서 현실감이 떨어짐을 느끼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으나,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지는 정신분열증의 묘사에 이르러 현실감을 느끼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해준 책. 작가의 고통이 슬며시 배어나오는 듯하다.


    내가 여태 접한 여러가지 SF 컨텐츠들-매트릭스, 공각기동대, 에반게리온, 터미네이터-이 많은 부분을 필립 K. 딕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느낀다. 그가 상상한 여러가지 것들의 변형을 여기저기서 보아왔음을 알겠다. 그의 상상이 현실이 되어서라기 보다는 그 상상자체가 가진 강력한 힘 덕분이 아닐까. 


    *이 책의 교훈 : 부동산 투기는 위험하다. 잘못하면 '어니 코트'처럼 죽을 수도 있다.


    다 읽고나면, 책의 뒤편에 꽤 공들여 써주신 역자 후기와 작가 연보가 있다. 황금가지의 <안드로이드...>에는 없는 부분. 번역 문체도 보다 매끄러운 느낌이다. 역자 후기를 통해 총 12권의 <필립 K. 딕 걸작선>을 간접 광고하고 있으므로, 이에 부응하여 다음에 읽을 <유빅>은 폴라북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화성의 타임슬립

    저자
    필립 K. 딕 지음
    출판사
    폴라북스 | 2011-04-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필립 K. 딕 특유의 현실 붕괴 감각이 돋보이는 걸작!20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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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김힐링